감히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일상


 공동작업이라는 전제아래서

 결국 전체적인 아웃풋을 결정짓는 것은 디테일이다. 그리고 그 디테일은 팀웍의 산물이다. 하나의 결과 안에 얼마나 많은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지가 전체 질을 결정짓는다. 

 최악의 아웃풋은 촬영기자와 취재기자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취재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거 찍었냐?, 안찍었는데요?"의 진부함으로 귀결된다. 

 취재기자입장에서는 필요한 그림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시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리고 그 지시는 기사의 전체적인 와꾸와 기사방향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상적인 방법은 보도자료와 기사계획을 바탕으로 촬영기자와 함께 작업방향을 논의하는 것이다.

 다만 취재기자가 세세한 그림의 구성과 연결방식까지는 신경쓸 필요는 없다. 미장센과 몽타주구성은 촬영기자 고유의 몫이다.

  더 나은 아웃풋을 위하여.

 진부한 얘기지만 기사내용과 그림이 딱딱 들어맞을때 방송기사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그림 속 현장이 언급되면서 뉴스의 현장감이 강화되고 또 시청자에게  "있는그대로를 보여주고 있구나"라는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기획의 참신함은 취재기자의 몫이며 촬영기자가 왈가왈부 할 수 없는 분야라면 현장성만큼은 그림을 수집하는 촬영기자가 얼마든지 개입하고 확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림이 없는 방송기사는 현장성이 없는 기사로서 설득력이 없는 기사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기사의 전개는 가능하지만 이는 수치나 통계, 사건의 재구성 같은 현장이 없는 추상적인 부분을 언급할때 쓰여야 마땅하다. CG위주로 구성된 기사는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기사에 비해 매가리가 없다.

오디오와 육성, 생생한 그림을 포착하고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들뢰즈 식의 '사건' 즉 발생하고 있는 이벤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전달하려는 노력이 뉴스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자료나 수치에 대한 단순한 소개나 언급만으로 방송기사가 구성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이나 성분이 사람에게 위해롭다는 것을 단순한 통계로 보여주는 것이 죽은 기사라면 그 성분을 직접 모르모트에게 투약해 그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생동감 있는 기사인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직접 실험해보겠습니다.' '직접 따라가봤습니다' 따위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방송뉴스의 구성이라 할수있다. 

smashing pumpkins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5 음악


 10대때 가장 원했던 앨범. 이제는 유트브로 간편히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 팝관련 라디오나 음악채널에서 겨우 들었던 앨범의 노래였다. 한국에는 무슨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 앨범을 찾기가 힘들었다. 앨범이 정발되고 한참 시간이 흐른후에야 새롭게 개장한 대형마트 음악코너에 샀던것 같다. 그때가 중3. 그러고 보니 중학생주제에 뭘 안다고 참 취향이 독특하긴 했다. 

쨌든 90년대 최고 앨범을 뽑으라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앨범.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정점을 찍어버린 앨범이라고 해야하나 그 독특함과 응집된 예술성은 70년대 핑크 플로이드 못지 않다.   

구글 글래스 일상




이제 글래스의 시대가 열리나? 듣기로는 부서지지 않는 구불한 소재로 만든다는데. 

구글 글래스 쓴 사람은 도촬의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하시오!












기억에 남는 리포트 output


 엄청 더운데도 불구하고 거의 온 종일을 땡볕에서 보냈다. 
특히 저 스탠딩은 3층 높이의 가건물에 엉금엉금 기어올라가 흔들리는 바닥위에서 했다. 
아마 지금까지 잡은 스탠딩 중에서도 가장 뭣같은 상황에서 잡은 스탠딩일거다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견딜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고 또 보람도 있었던 리포트라 기억에 남는다.

두물머리에는 아쉽게도 공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반 고흐 인 파리에 다녀와서 전시


 비운의 천재 화가 반고흐의 2번째 전시 프로젝트인 반 고흐 인 파리에 다녀왔다. 좋았던 것은 여자친구와 함께였던 것. 나빴던 것은 여자친구의 초등학생 동생도 함께 했다는 것. (다 보고 다시 돌아가서 봐야했다.)
 
 흔히 아는 반 고흐의 그림, 그가 절정이었을때의 그림말고 과도기적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 잘 접하지 않았던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걸로 모면했다.

 반고흐의 네덜란드적 그림들은 구도감은 좋았지만 흔하디 흔한 그림이었다. 그렇던 그림이 돈이 없어 인물을 섭외하지 못해 사물을 집중적으로 그리면서 좋아지기 시작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색이었다. 인물을 그리며 젖는 감상이나 상호적 관계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반 고흐는 사물을 그리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루한 환경 속 격한 붓터치와 명료한 색감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기 한 고흐는 파리로 건너가면서 인상주의와 만난다. 그러면서 당시 유행했던 일본화에 빠지기도 했고 점묘법이나 얇은 붓터치 등 다양한 방식을 체득한다. 인상주의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고흐는 없었을 것이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처럼 대상을 자세히,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에서 탈피하고 주관을 반영해 그리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생활 덕이다.

주옥같은 작품을 보진 못했지만 그러한 작품으로 가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을 본 점이 좋았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습득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번 전시를 다녀와서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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